재벌의 품격 / 서인하 (+ 추가 01302023)

199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재경 그룹 회장 손중길.
눈을 감고 30년 뒤, 2022년 손자 손정훈의 몸으로 눈을 뜬다.
30년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쇠퇴한 재경 그룹.
손중길은 자신이 일궈 낸 그룹을 다시금 정상에 올리려 한다.
서인하 작가님의 신작이 뜨면 기쁜 마음으로 읽습니다. 특유의 문체는 호불호가 있을 지언정 내용이나 작가님의 연재 성실도는 정말 믿을만 하거든요. 이른바 믿고 보는 작가님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작가님의 신작이 떴습니다. 소시민이 로또 1등에 당첨되고 나서 이로 인한 자신감으로 회사를 다니는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 카지노를 다룬 <치타는 웃고있다>, 주류 업계를 다룬 <어쩌다 사장이 되었습니다> 등등 모두 회사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다룬 작품들 이었고 모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번 신작은 회사를 다루었지만 주인공은 재벌 3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재벌을 세운 초대회장이 자신의 손자인 재벌3세의 몸에 빙의해 쇠퇴한 자신의 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입니다.
소재는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드마라화 되어 화제인 재벌가 환생물을 다룬 <재벌가 막내아들>이 이 분야의 선조격이고, 초대 회장이 환생해서 자신의 기업을 살린다는 소재의 소설도 있고, 신입사원에 빙의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작들보다 세련되어진 서술과 이야기의 흐름은 저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주인공인 손정훈(손정길)이 깨어나서 언듯 내비추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은 구체적이고 인간적입니다. 그리고 경험을 기반으로 한 직선적인 기업운영과 앞으로 더욱 흥미진진하게 벌어질 것 같은 기업 후계 구도도 재미있습니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들은 작가님의 장점이고 이번 작품에서 더욱 극대화 되는 느낌입니다. 작가님께 충성충성.
+추가 01. 30. 2023
이번 작은 읽으면서 굉장히 실망을 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연재분 읽기를 포기해 버렸습니다.
첫번째 실망은 그룹을 살리겠다고 아버지 (현 그룹회장 구 둘째아들)에게 가서 엄청난 기획을 얘기했는데 아버지는 이걸 장남(현 형님 구 손자)에게 고대로 넘겨줍니다. 차남이 제공한 아이디어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서요. 물론 주인공에게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럴 줄 알았다며 그냥 조용히 넘깁니다. 읽고 있던 나에게는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몇 화 지나고 나서야 주인공에게는 따로 계획이 있어 하면서 당위성을 부여해 주긴 합니다만 이걸 꼭 나중에 밝혔어야 했나 싶습니다.
두번째 실망은 여자 캐릭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인하 작가님이 여캐를 그렇게 잘 묘사하는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못쓰시는 편도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대부분 “아내”역을 하는 캐릭터는 꼭 있어왔고 크게 거슬리는 면은 없어서 안심하고 읽어왔었는데, 이번 작에서는 전생에서의 본인 친구의 손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이 황당합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자기 친구의 손녀와 결혼한다? 자기 친구에게도 못할 짓이고 친구 손녀에게도 못할 짓입니다. 주인공은 다른 여성을 골라 맺어질 수 있는 집인과 재력을 가졌는데 꼭 친구손녀와 맺어져야 하나요?
게다가 집안의 암묵적인 혼인 얘기가 나오기 전에 본인이 전처의 무덤에 가서 하는 말이 진짜 손자가 돌아와도 몸 돌려주기 싫다는 거였습니다.

초반에 그렇게 조심조심 고민하던 캐릭터는 어디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캐릭터 붕괴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게 진심이라면 정말 소시오패스라고 불려도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재분을 보지는 않을 것 입니다.
이번 작은 뭔가 잔뜩 준비하고 오신 것 같은 느낌이라 반기고 좋아했었는데 이런 전개가 나올지는 몰랐어요.